목가적 풍경에 숨은 원초적 본능
19세기 후반 이탈리아의 외딴 마을 라푸스 지방. 방랑자 루치아노(가브리엘레 실리)가 돌아온다. 그의 삶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쓰라린 상처로 술에 절어 있다. 얼굴은 긴 수염으로 덮여 있어 몇 살인자조차 알 수 없다. 마을을 떠돌아다니며 폐인처럼 거리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어느 날 루치아노는 지역의 영주가 닫아 놓은 통로의 문을 부수어 버린다. 그리고 양치기의 딸 엠마와 사랑에 빠진다. 엠마를 탐하고 있던 영주는 분노하고 사람들은 그를 세상의 반대편 아르헨티나로 추방해 버린다. 탐욕과 광기만이 만연한 불모의 땅에 도착한 루치아노는 신부로부터 해적선이 난파되면서 해적들이 어딘가에 황금을 묻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루치아노는 신부로 가장하고 아르헨티나의 최첨단 파타고니아로 이동한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 황금 자체에는 관심이 없는 루치아노, 그러나 도적들이 그를 쫓는다. 보물을 찾기 위해선 킹크랩의 안내를 받아야만 한다. 이 총명한 킹크랩은 파타고니아에서 전승되어온 전설의 동물이다. 눈부시게 붉은 킹크랩, 보물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나침반과도 같은 존재이다. 킹크랩을 이용하여 보물을 물속에 묻고, 또한 다시 찾을 수 있다. 영화 ‘킹크랩의 전설’은 다큐멘터리 작가인 알레시오 리고 데 리기와 마테오조피스 두 사람이 공동 연출한 그들의 장편 데뷔작이다. 두 개의 반쪽을 하나의 스토리로 이어가는 구조를 띠고 있다. 두 이야기 사이에는 민담과 신화가 있다. 독특한 스토리텔링 방식이 목가적 풍경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촬영은 자연주의 질감을 담고 있다. ‘킹그랩의 전설’은 생각을 자극하는 영화이다. 사랑, 명예, 탐욕, 배신 등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들이 다양한 캐릭터들을 통해 그려지는 내러티브 스타일을 사용한다. 원시적인 인간의 본성을 킹크랩과 조화시키는 터무니 없는 설정 또한 이채롭고 대담하다. 비주얼 아티스트 실리는 연기 경험이 전혀 없음에도 원초적 생명력을 지닌 인간의 고통을 깊이 있게 연기한다. 이탈리아의 대배우 지안카를로 지아니니의 눈을 지닌 그는 놀라울 정도의 표현력을 지닌 배우이다. 실리는 술에 취한, 그리고 사랑에 눈먼 자 루치아노를 깊은 목소리, 관통하는 듯한 응시로 표현한다. 엠마와 루치아노 사이에 오가는 에로티시즘도 독특하게 표현된다. 흔히 보는 남녀 배우들의 에로틱한 케미스트리를 추구하지 않는다. 초원 또는 바닷가를 배경으로 둘 사이에 흐르는 성적 분위기가 묘한 관능으로 전해져 온다. 김정 영화평론가킹크랩 영화 킹크랩